전시섹션보기

× 전시섹션 페이지에서는 전시 주제별로 구분된 전시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 콘텐츠는 PNU로컬리티아카이브에서 직접 수집하거나 기증 받은 다양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이 기록 기증과 수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전시 콘텐츠가 보다 알차고 풍부해 질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약사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크게 6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 1기 : 2000년 1월 ~ 2005년 12월

제 2기 : 2005년 12월 ~ 2010년 11월

제 3기 : 2010년 11월 ~ 2012년 1월

제 4기 : 2012년 1월 ~ 2013년 5월

제 5기 : 2013년 5월 ~ 2014년 6월 11일

제 6기 : 2014년 6월 11일 ~ 현재

제 1기는 밀양 송전탑이 건설되는 계기가 되는 시기이며, 실제적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제 2기인 2005년부터이다.

이 전시에서는 타임라인을 통하여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고, 각 시기별로 대표 이미지와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송전선로 선로 길이 및 철탑  안내 공문 [문서] [건] (2002-10-07)

송전선로 선로 길이 및 철탑 안내 공문 (2002-10-07)

제 1기(2000년 1월 ~ 2005년 12월)

이 시기는 정부와 한국전력이 밀양 주민을 전혀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시기이다. 사실상, 이 시기에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의 전체적인 윤곽(경과지 확정, 환경영향평가 등)은 확정되었고, 밀양시 등 관계기관과도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 주민들만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민배제와 비밀주의가 이 투쟁을 10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송전탑 공사 전면 백지화 촉구 상경시위 [사진] [건] (2008-12-10)

송전탑 공사 전면 백지화 촉구 상경시위 (2008-12-10)

제 2기(2005년 12월 ~ 2010년 11월)

이 시기는 주민들이 밀양 송전탑 건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밀양 경과지 지역에 투쟁 분위기가 고조된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을 및 면단위 대책위를 구성하였고, 밀양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대책위가 꾸려져 다른 경과지인 부산시 기장군, 창녕군, 양산시 등 지역과도 연대하였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 이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시장이 당선되면서 밀양지역 관변단체까지 포괄하는 활동이 되었고, 큰 규모의 궐기대회를 수차례 개최하였고, 단식 투쟁, 상경 투쟁을 병행하였다. 현장에서는 한전의 공사 시도를 수차례 막아내면서 또한 국민권익위 주관 갈등조정위원회 등을 통해 백지화, 우회송전, 지중화(초전도체 지중화 포함) 등 여러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약산사 주지스님에 대한 폭행 상해사건 [사진] [건] (2011-11-10)

약산사 주지스님에 대한 폭행 상해사건 (2011-11-10)

제 3기(2010년 11월 ~ 2012년 1월)

이 시기는 경실련이 주관하는 ‘보상 제도 개선위원회’의 활동과 아울러 현장에서는 계속되는 한전의 공사 재개를 현장 투쟁을 통해 막아내던 시기이다. 주민대표가 참여한 보상제도개선위원회의 활동은 이후 ‘송주법’ 제정의 기반이 되었지만, 당시 주민들 다수는 보상 자체에 반대하였고, 공사가 재개되면 물리적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2011년 가을 이후 현장에서는 동시다발로 공사가 강행되어 주민들은 현장에서 인부들과 맞서서 고달픈 나날을 이어가야 했다.

고 이치우 어르신 촛불 문화제 [사진] [건] (2012-01-25)

고 이치우 어르신 촛불 문화제 (2012-01-25)

제 4기(2012년 1월 ~ 2013년 5월)

2012년 1월 16일은 밀양 송전탑 투쟁 1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산외면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께서 현장에서 분신 자결하신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밀양 송전탑 문제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밀양 투쟁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및 연대 시민들과의 지원 속에서 에너지 분야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수많은 연대 시민 및 단체들이 밀양을 방문하였고, 이는 주민들의 투쟁을 이어가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이 시기, 한전은 다시 두 차례나 전면적인 공사를 재개하였으나, 주민들의 눈물겨운 투쟁과 이에 따른 여론 악화로 두 차례 모두 공사가 중단되게 된다. 

밀양 송전탑 현수막의 사진 모음 [사진] [건] (2013-07-26)

밀양 송전탑 현수막의 사진 모음 (2013-07-26)

제 5기(2013년 5월 ~ 2014년 6월 11일)

이 시기는 밀양송전탑 10년 투쟁의 가장 밀도 높은 시간에 해당한다. 이미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자결 이후 2013년 5월공사를 거치면서 밀양 송전탑 투쟁은 전국화되었고, 2013년 5월 공사 중단 이후 정부와 한전은 공권력, 언론, 관변단체 등을 총 동원하여 밀양 송전탑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전문가협의체에서 주민들이 지금껏 주장해온 우회송전 및 지중화 가능성을 확인하였으나, 정부와 한전은 대필 및 표절 보고서로 밀어붙였고, 결국 국회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2013년 10월 공사 재개 직전에는 국무총리, 산업부장관, 경찰청장이 직접 밀양을 방문하였고, 2013년 10월 공사 직후에는 매일 3천명의 경찰병력이 10개월간 상주하였다. 공사 재개 이후 현장에서는 매일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연대활동가들이 매일 밀양을 찾아 주민들과 연대하였다.

이에 따라 밀양송전탑 공사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도 ‘공사중단과 대화’로 기울어갔고, 10월 공사의 근거가 되었던 신고리3호기의 준공이 위조부품 사용 발각과 성능 재시험 탈락으로 2년 가까이 뒤로 밀리게 되었지만, 정부와 한전은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2013년 12월,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 어르신이 음독자결하였다. 밀양을 향한 연대는 두 차례의 전국희망버스 행사를 통해 각각 3천명, 4천명의 연대자들이 한꺼번에 밀양을 방문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권력이 원천 봉쇄한 현장의 철탑 공사는 착착 진행되었고, 주민들은 마지막 남은 4개 현장(101·115·127·129번) 움막농성장에 최후의 배수진을 쳤다.

이 4개 현장에 대한 6.11행정대집행은 밀양 주민에게 가해졌던 국가폭력의 한 절정이었다. 결국 주민들은 현장에서 모두 끌려나오게 되었다.

송주법 및 전기사업법 위헌소송 제기 공동기자회견 [사진] [건] (2014-10-24)

송주법 및 전기사업법 위헌소송 제기 공동기자회견 (2014-10-24)

제 6기(2014년 6월 11일 ~ 현재)

이 시기는 밀양 주민들로서는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유례없는 폭력으로 점철된 행정대집행을 당했고, 현장에서 모두 들려나온 채 송전탑이 건설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 마을공동체가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송전탑을 바라보는 고통에 더하여 일생 한 이웃으로 지내던 사람들과 서로 등지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떠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많은 연대 시민들은 밀양을 여전히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지지가 미니팜협동조합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밀양 주민들이 사법처리 국면에서 받게 될 것을 예상되는 고액의 벌금을 모금하기 위한 북콘서트, 영화상영회 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다.

반대 대책위는 이 ‘시즌 2’의 시간동안 힘들어하는 주민들을 돕고, 사법처리에 대한 대응, 수많은 탈핵탈송전탑 투쟁 현장에 대한 외부 연대, 그리고 밀양을 비롯한 국가폭력에 신음하는 현장과의 연대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 다시 일어서고자 하였다.